
“여기가 정말 한국 맞나 싶어.” 함께 떠난 일행이 성인봉 자락에서 내뱉은 감탄사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짙푸른 동해 바다가 맞닿은 풍경은 마치 낯선 외국의 섬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육지에서 130km나 떨어진 이 외딴 화산섬은 접근하는 과정부터가 하나의 모험이었다.
살아있는 지구의 박동을 느끼는 화산섬
울릉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거대한 해산의 꼭대기다. 바닷속 2,200m 깊이의 해저면부터 솟아오른 이 산의 실제 높이는 3,000m가 넘는다고 하니, 우리가 딛고 선 땅이 얼마나 거대한 자연의 산물인지 새삼 느껴진다. 특히 섬 중앙의 나리분지는 과거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칼데라 지형으로, 주변의 험준한 산세와는 대조적인 평온함을 선사한다.
놀라운 점은 이곳이 여전히 활화산의 범주에 든다는 사실이다. 지하 온도가 백두산에 맞먹는 수준으로 높고, 곳곳에서 이산화탄소가 분출되는 모습은 지구가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한다. 약 5,000년 전 마지막 분출 이후 잠잠해 보이지만, 노르스름한 화산재층과 조면암질 용암류의 흔적들은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바가지라는 오명 뒤에 숨은 진짜 맛
울릉도 하면 흔히 ‘비싼 물가’나 ‘바가지요금’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실제로 2022년 역대 최대 방문객을 기록했다가 최근 서비스 부실과 가격 논란으로 방문객이 줄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울릉도의 식탁은 그 오명을 씻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정직하고 풍성했다.
특히 봄의 울릉도는 그야말로 초록의 잔치다. 산비탈을 따라 돋아난 명이와 부지깽이, 그리고 ‘나물의 귀족’이라 불리는 참고비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권이다. 털을 벗기고 말리는 고단한 과정을 거친 참고비는 고사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향을 낸다. 나리분지의 산채정식 한 상에 14가지가 넘는 나물 반찬이 깔리는 풍경을 보면, 이곳의 물가는 단순히 ‘비싼 것’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 얻어낸 정성의 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의 선물 또한 화려하다. 주황빛 몸체에 큰 눈이 매력적인 도화볼락(메바리)은 주민들의 든든한 상비 식재료이며, 붉은 빛의 홍해삼은 쫄깃한 식감으로 입맛을 돋운다. 물론 1kg에 30만 원을 호가하는 독도새우는 귀한 대접을 받지만, 갓 잡은 도다리와 뿔소라가 가득한 물회 한 그릇이면 동해의 모든 생명력을 한입에 머금은 기분이 든다.
역사와 낭만이 교차하는 길을 걷다
울릉도는 단순히 경치만 좋은 곳이 아니라, 우리 영토를 지켜온 치열한 기록이 새겨진 곳이다. 최근 조선 시대 울릉도 수토(搜討) 유적에 대한 전면 조사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이곳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신라 시대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부터 조선 시대의 공도 정책, 그리고 안용복의 활약까지, 울릉도는 늘 동북아 정세의 최전선에서 외로운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그 역사의 무게를 뒤로하고 행남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 앞에 겸허해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투명한 바다가 어우러진 길은 연인들에게는 로맨틱한 데이트 코스가 되고, 혼자 걷는 이에게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된다. 사동항에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이나 관음도의 이색적인 풍경은 일상의 소란함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울릉도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묘미다. 기상 상황에 따라 배편이 취소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안개에 독도 입도가 무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다는 설렘을 준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울릉도는 단순히 ‘소비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경외심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다음 방문 때는 조금 더 느린 호흡으로 머물고 싶다. 성인봉의 숲길을 더 깊숙이 탐방하고, 현지 주민들이 말하는 섬의 옛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 여러분은 일상의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삶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모든 것이 날씨와 운에 맡겨지는 여행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