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후예들이 세운 이 땅은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갈등의 중심지가 되어야만 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페르시아의 자부심과 현대의 엄격한 신정 체제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충돌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단순히 뉴스 속의 지정학적 위기가 아니라,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제국의 기억과 신권 정치의 기묘한 동거
이란은 단순히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라,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제가 건설한 아케메네스 제국부터 파르티아와 사산 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호령했던 거대한 문명의 발상지다. 7세기 이슬람교의 유입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1979년의 혁명은 이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팔라비 왕조의 서구식 개혁과 독재에 반발해 세워진 이슬람 공화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신정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
이 체제의 핵심은 라흐바르라 불리는 최고지도자다. 헌법수호위원회의 간선제로 선출되는 이 종신직 지도자는 대통령 후보 선택권부터 최종 정책 결정권까지 쥐고 있는 실질적인 절대 권력자다. 국민들이 직접 뽑는 대통령과 국회가 존재하지만, 이는 사실상 신권 정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제한적 다원주의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내면은 시아파 율법 전문가들이 통치하는 ‘이슬람법 전문가정’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의 정통성을 종교에서 찾으려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들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낳는 원인이 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 찢겨나간 가족의 유대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과 내부적인 혼란은 이란 사회의 균열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25년과 2026년을 거치며 벌어진 일련의 군사적 충돌과 경제적 붕괴는 국가라는 거대 담론을 넘어 개인의 가장 내밀한 관계인 가족마저 파괴하고 있다. 테헤란의 거리에는 폭발로 인한 연기가 일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거나 생활 방식을 바꾸며 처절하게 적응하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정치적 신념이 혈연의 정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민병대 ‘바시즈’ 소속의 삼촌과 현 체제에 반대하는 조카가 명절인 노루즈에 모여 서로에게 “연을 끊자”고 소리치는 풍경은 이란이 겪고 있는 내전 상태의 심리적 단면을 보여준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 이후, 이란의 가정들은 이미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정권의 몰락을 위해 외세의 공습조차 지지하고, 누군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가족의 죽음조차 외면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 고립과 외부 세력의 정교한 개입
이란의 고통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격에서만 오지 않는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와 금융 공격은 리알화의 가치를 폭락시켰고, 이는 곧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 배고픔과 절망은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 틈을 타 외부 정보기관들의 정교한 심리전과 개입이 이루어졌다. CIA와 모사드가 쿠르드족 민병대를 지원하고 SNS를 통해 시위를 선동했다는 정황들은 이 전쟁이 단순한 국가 간의 충돌이 아니라, 내부의 불만을 이용한 정권 교체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희생자는 이 갈등이 민족적, 종교적 층위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을 비난하는 동안, 거리의 시민들은 스타링크 같은 위성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각자의 생존 방식을 찾고 있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의 도구가 될 때, 개인은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시점이다.
무너진 폐허 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이란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한 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문명이 신념의 절대화와 외부의 압력, 그리고 내부의 분열로 인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목격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신념이 가족의 사랑보다 우선시될 때 그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시민들의 피와 눈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폭발음이 들리는 와중에도 요가를 하고, 홀로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일상을 지켜내려는 이란 청년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강인한 인간성을 발견한다.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이제는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핵 협상’이나 ‘미사일 커넥션’ 같은 단어들 뒤에 숨겨진, 서로를 증오하게 된 남매의 이야기와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는 청년들의 고독에 주목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연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강제적인 정권 교체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찢어진 가족의 유대를 다시 잇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