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논밭에서 AI가 찾아낸 쌀 농사의 새로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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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논 위로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색채 뒤에는 예측 불가능한 폭우와 갑작스러운 가뭄이라는 잿빛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흙을 만지는 농부의 거친 손마디에는 이제 자연에 대한 경외심보다 내일의 날씨에 대한 불안함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통의 땀방울과 차가운 알고리즘의 만남

농사는 예로부터 ‘하늘이 짓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때맞춰 내리는 비와 적당한 햇살이 없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기후 변화는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때’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으로 벼의 생육 주기가 꼬이고, 예상치 못한 병충해가 창궐하며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갑니다.

이 지점에서 한 AI 스타트업의 시도가 눈길을 끕니다. 그들은 논밭의 흙 속에 센서를 심고 하늘에는 위성을 띄워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쌀 농사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영역에 인공지능이라는 가장 현대적인 도구를 접목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투쟁에 가깝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개별 농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보이지 않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AI는 수십 년간의 기상 데이터와 현재의 토양 상태, 그리고 벼의 성장 속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농부에게 속삭입니다. “지금 물을 대야 합니다” 혹은 “다음 주에 특정 병충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미리 대비하세요”라고 말이죠. 경험에 의존하던 농법이 데이터 기반의 정밀 농업으로 진화하는 순간입니다.

데이터가 구하는 식량 안보의 미래

우리가 매일 먹는 쌀 한 그릇에는 단순한 영양소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쌀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주식이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작물입니다. 만약 기후 위기로 인해 쌀 생산량이 급감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쌀값이 오르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기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솔루션은 단순히 개별 농가의 수익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적의 비료 투입량을 계산해 토양 오염을 줄이고, 물 사용량을 정밀하게 조절함으로써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가능하게 합니다.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식량을, 더 건강하게 생산하는 것. 이것이 AI가 농촌에서 실현하고 있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물론 현장의 반응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 앱의 알림은 낯설고 때로는 불신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라는 재난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술에 대한 거부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수확철에 마주할 빈 들판이라는 사실을 농민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을까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AI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농부의 ‘감’과 ‘경험’은 이제 쓸모없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AI가 제공하는 것은 확률과 통계이지, 생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잎사귀의 색깔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줄 순 있지만, 그 잎사귀 하나하나를 살피며 느끼는 농부의 애틋함까지 읽어내지는 못합니다. 결국 AI는 농부의 눈과 귀를 확장해 주는 보조 도구일 뿐, 최종적인 판단과 정성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농사는 AI의 정밀한 분석과 농부의 숙련된 직관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됩니다.

결국 이 스타트업의 도전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다시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파괴된 생태계의 균형을 기술로 보완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의 리듬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인 셈입니다. 차가운 서버실의 연산 결과가 뜨거운 논밭의 생명력으로 치환되는 과정은 묘한 감동을 줍니다.

우리가 마주할 내일의 식탁

우리는 마트에서 예쁘게 포장된 쌀 포대를 집어 들 때, 그 쌀이 어떤 기후의 고통을 견뎌냈는지, 혹은 어떤 기술의 도움을 받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식탁의 평화가 누군가의 처절한 사투와 혁신적인 기술의 결합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앞으로 AI는 쌀뿐만 아니라 밀, 옥수수,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작물로 영역을 넓혀갈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멈추지 않겠지만,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 대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잘하는 일(생명을 돌보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저녁,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마주하며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래의 농촌은 어떤 모습일까요? 기계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무인 농장일까요, 아니면 AI의 도움을 받아 더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는 농부들의 낙원일까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미래의 식탁은 어떤 풍경인가요?

일곱 번째 도전과 KDB생명의 끈질긴 생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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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 뉴스를 훑어보다가 ‘6전 7기’라는 강렬한 문구와 함께 KDB생명의 매각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 기업이 주인을 찾기 위해 일곱 번이나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경영 지표 이상의 피로감과 간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금융 시장의 냉혹함과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조직의 분투가 교차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자본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처절한 노력

KDB생명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때 완전자본잠식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며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보험사에게 자본 건전성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그 장치가 무너졌다는 것은 경영진과 직원 모두에게 엄청난 압박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산업은행은 대규모 증자를 통해 5,000억 원이라는 거액의 자금을 수혈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룬 뒤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선 정상화, 후 매각’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을 채우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2023년에는 주당 가치를 높이고 이월결손금을 보전하기 위해 4주를 1주로 병합하는 자본감소(감자)라는 뼈를 깎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까지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단순히 숫자상의 조정이 아닙니다. 주주와 채권자, 그리고 보험 계약자들의 이의 제기 가능성을 열어두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KDB생명타워 9층 전략기획팀으로 쏟아졌을 수많은 문의와 항의들을 생각하면, 재무제표 뒤에 숨겨진 실무자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반복되는 매각 실패와 시장의 냉정한 평가

매각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일곱 번째 도전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KDB생명은 여러 차례 매수 희망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보험업계의 환경 변화, IFRS17 도입으로 인한 회계 기준의 변경, 그리고 금리 변동성까지 맞물리며 인수 후보자들에게는 ‘리스크가 큰 매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외국계 자본의 등장과 퇴장이 반복되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희망과 실망 사이를 오갔습니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던 인수 후보들이 막판에 발길을 돌릴 때마다 KDB생명이 짊어져야 했던 심리적 무게는 상당했을 것입니다. 기업의 가치를 재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본 확충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증명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의 매각 승인이 떨어지며 다시 한번 시동을 걸었다는 소식은 의미심장합니다. 금융당국의 재가라는 제도적 문턱을 넘었기에, 이제는 실질적인 인수자의 의지와 조건이 관건이 되었습니다. 시장은 이제 KDB생명이 단순히 ‘정상화’된 상태를 넘어, 어떤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를 묻고 있습니다.

새로운 리더십과 포트폴리오의 재정비

경영의 키를 잡은 김병철 체제 아래에서 KDB생명은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리더십의 핵심 과제는 명확합니다. 바로 포트폴리오의 재정비입니다. 과거의 영업 방식이나 상품 구조에 머물러 있어서는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험업의 본질은 위험 관리와 자산 운용의 조화에 있습니다. KDB생명이 가진 기존의 자산 구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맞는 상품 라인업을 구축하느냐가 매각 성공의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자본 수혈로 급한 불은 껐지만, 이제는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입니다.

결국 매각의 성패는 ‘누가 인수하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팔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수 후 정상화를 위한 자본 확충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보험 계약자들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KDB생명이 겪은 일곱 번의 시련이 헛되지 않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여정과 우리가 생각할 점

KDB생명의 사례를 보며 기업의 생존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투쟁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뉴스 속의 ‘매각 추진’이라는 네 글자일 뿐이겠지만, 그 안에는 수천 명의 직원과 수많은 계약자의 삶, 그리고 국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라는 무거운 가치들이 얽혀 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곱 번째 도전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묘한 경외감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경영상의 실책과 구조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자체는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그 간절함이 시장의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성공한 기업의 화려한 성장 서사에 주목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다시 세우려는 ‘정상화의 서사’가 더 많은 교훈을 줍니다. KDB생명이 이번에는 부디 좋은 주인을 만나, 더 이상 ‘몇 전 몇 기’라는 수식어 없이 안정적인 금융사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한 기업의 끈질긴 생존 투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약속의 땅과 눈물의 땅 사이, 이스라엘이 품은 모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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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 작은 점 하나, 지중해 동쪽 끝에 매달린 좁고 긴 땅이 있다. 해안 평야의 비옥한 초록빛과 네게브 사막의 황량한 모래색이 공존하고, 고대 성벽의 거친 돌결이 현대 도시의 매끄러운 유리창과 겹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수천 년을 기다려 돌아온 약속의 땅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실의 땅이기도 하다.

뿌리 깊은 갈망과 시오니즘의 탄생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아주 오래전, 가나안 지역의 고대 셈어 사용자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00년경 메르넵타 석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이들은 독특한 단일신 신앙을 통해 주변 민족과 스스로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사는 이들에게 정착의 평온함보다 유랑의 고통을 더 오래 허락했다.

유럽의 유대인들은 수 세기 동안 토지 소유 금지와 거주지 제한이라는 지독한 배제를 견뎌야 했다. 특히 나치에 의해 600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유대인들에게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생존의 절박함을 심어주었다. 더 이상 취약한 소수 민족으로 살 수 없다는 깨달음, 즉 스스로를 보호할 독립적인 조국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갈망이 현대 시오니즘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하며 반유대주의의 뿌리 깊은 증오를 목격했다. 그는 유대인이 사회에 동화되려 노력해도 결국 ‘외부인’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보았고, 이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의 귀환은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이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침공이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경계선 위에 세워진 불안한 평화

이스라엘의 영토를 정의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면적은 약 20,770㎢로 우리나라의 전라도 크기와 비슷하지만, 실제 실효 지배 면적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골란 고원 등을 포함해 약 28,000㎢에 달한다. 이 수치의 차이 속에 바로 이 지역의 모든 갈등이 응축되어 있다.

특히 골란 고원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비옥한 땅이기에 시리아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미 1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이 정착해 살고 있어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곳에 원래 살던 시리아인들의 삶 또한 지워지지 않은 채 얽혀 있다. 홍해의 유일한 항구도시 에일라트가 가진 11km의 짧은 해안선조차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좁은 이스라엘에게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통로가 된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둘러싼 분쟁은 이제 단순한 영토 싸움을 넘어 종교와 민족, 그리고 생존권의 충돌로 변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의 폐쇄성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제는 서로를 향한 증오를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다. 평화라는 단어는 이곳에서 가장 값비싸고도 얻기 힘든 사치품처럼 느껴진다.

파괴된 상징과 지워지지 않는 상흔

최근 레바논 남부 데벨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 갈등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파괴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 이스라엘 군인이 망치로 예수상의 머리를 부수는 장면이 공개되었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를 개인의 일탈이라며 군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성서의 누가복음 구절인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라는 문구가 SNS를 통해 공유된 것은 역설적이다. 종교적 상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단순한 기물 파손이 아니라, 상대의 정체성과 신념을 말살하려는 폭력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이 국제법 위에 군림하며 민간 시설과 종교적 상징물을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쟁의 참혹함은 통계 수치보다 개개인의 삶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성폭력 논란과 언론인 살해, 병원과 학교의 파괴라는 참혹한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1948년 건국 당시 그들이 꿈꿨던 ‘안전한 조국’의 의미는 퇴색된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그리고 새로운 피해자가 된 원주민들의 서사는 이 땅을 거대한 눈물의 바다로 만들고 있다.

공존이라는 불가능한 과제에 대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로 설명될 수 없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겪은 이들의 생존 본능과,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긴 이들의 저항권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에게 이 땅은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며, 그렇기에 타협은 배신으로 여겨진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정의의 충돌’이다. 나의 정의가 상대의 불의가 되는 비극적인 구조 속에서, 무력은 일시적인 억압을 가져올 순 있어도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파괴된 예수상을 복원한다고 해서 부서진 마음과 무너진 신뢰까지 복원될 수 있을까. 증오의 대물림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영토의 선을 긋는 일보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우리는 이 먼 나라의 비극을 보며 무엇을 배워야 할까.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는 행위가 어떻게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이 땅에 증오가 아닌 공존의 서사가 쓰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여러분은 이 끝없는 평행선 같은 갈등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페르시아의 영광과 신정 정치의 균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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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후예들이 세운 이 땅은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갈등의 중심지가 되어야만 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페르시아의 자부심과 현대의 엄격한 신정 체제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충돌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단순히 뉴스 속의 지정학적 위기가 아니라,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제국의 기억과 신권 정치의 기묘한 동거

이란은 단순히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라,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제가 건설한 아케메네스 제국부터 파르티아와 사산 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호령했던 거대한 문명의 발상지다. 7세기 이슬람교의 유입 이후 페르시아는 이슬람 문화와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1979년의 혁명은 이 나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팔라비 왕조의 서구식 개혁과 독재에 반발해 세워진 이슬람 공화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신정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

이 체제의 핵심은 라흐바르라 불리는 최고지도자다. 헌법수호위원회의 간선제로 선출되는 이 종신직 지도자는 대통령 후보 선택권부터 최종 정책 결정권까지 쥐고 있는 실질적인 절대 권력자다. 국민들이 직접 뽑는 대통령과 국회가 존재하지만, 이는 사실상 신권 정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제한적 다원주의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내면은 시아파 율법 전문가들이 통치하는 ‘이슬람법 전문가정’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의 정통성을 종교에서 찾으려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들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낳는 원인이 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 찢겨나간 가족의 유대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과 내부적인 혼란은 이란 사회의 균열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25년과 2026년을 거치며 벌어진 일련의 군사적 충돌과 경제적 붕괴는 국가라는 거대 담론을 넘어 개인의 가장 내밀한 관계인 가족마저 파괴하고 있다. 테헤란의 거리에는 폭발로 인한 연기가 일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거나 생활 방식을 바꾸며 처절하게 적응하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정치적 신념이 혈연의 정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민병대 ‘바시즈’ 소속의 삼촌과 현 체제에 반대하는 조카가 명절인 노루즈에 모여 서로에게 “연을 끊자”고 소리치는 풍경은 이란이 겪고 있는 내전 상태의 심리적 단면을 보여준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 이후, 이란의 가정들은 이미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정권의 몰락을 위해 외세의 공습조차 지지하고, 누군가는 체제 유지를 위해 가족의 죽음조차 외면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적 고립과 외부 세력의 정교한 개입

이란의 고통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격에서만 오지 않는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와 금융 공격은 리알화의 가치를 폭락시켰고, 이는 곧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 배고픔과 절망은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 틈을 타 외부 정보기관들의 정교한 심리전과 개입이 이루어졌다. CIA와 모사드가 쿠르드족 민병대를 지원하고 SNS를 통해 시위를 선동했다는 정황들은 이 전쟁이 단순한 국가 간의 충돌이 아니라, 내부의 불만을 이용한 정권 교체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희생자는 이 갈등이 민족적, 종교적 층위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을 비난하는 동안, 거리의 시민들은 스타링크 같은 위성 인터넷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각자의 생존 방식을 찾고 있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의 도구가 될 때, 개인은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시점이다.

무너진 폐허 위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이란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한 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문명이 신념의 절대화와 외부의 압력, 그리고 내부의 분열로 인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목격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신념이 가족의 사랑보다 우선시될 때 그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시민들의 피와 눈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폭발음이 들리는 와중에도 요가를 하고, 홀로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일상을 지켜내려는 이란 청년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강인한 인간성을 발견한다.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이제는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핵 협상’이나 ‘미사일 커넥션’ 같은 단어들 뒤에 숨겨진, 서로를 증오하게 된 남매의 이야기와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는 청년들의 고독에 주목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연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강제적인 정권 교체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찢어진 가족의 유대를 다시 잇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AI 시대에 평범한 사람이 인공지능을 도구로 길들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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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셜 미디어와 뉴스레터의 타임라인은 온통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공포와 경탄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는 AI가 쓴 완벽한 보고서에 감탄하고, 누군가는 한 번의 엉뚱한 답변에 실망하며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 힘들다는 무력감이 사회 전반에 옅게 깔려 있는 모습이다.

마법의 상자가 아닌 ‘똑똑한 인턴’으로 바라보기

많은 이들이 AI를 대할 때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모든 질문에 정답을 내놓는 전지전능한 ‘신탁’처럼 여기거나, 혹은 사소한 실수 하나에 “역시 쓸모없다”며 외면하는 식이다. 하지만 AI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 도구를 ‘의욕은 넘치지만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신입 인턴’처럼 대한다.

인턴에게 일을 시킬 때 단순히 “잘 해와”라고 말하지 않듯, AI에게도 구체적인 맥락과 명확한 목표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이 글의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톤으로 작성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AI 활용 능력의 핵심은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상대에게 일을 명확히 지시하고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위임의 능력에 있다.

실제로 수천 명에게 AI 교육을 진행한 전문가들의 관찰에 따르면, 성과를 내는 그룹의 특징은 기술적 배경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틀린 답이 나왔을 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답했을까?”를 고민하며 질문을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실험 정신이 결과의 질을 결정짓는다.

나에게 맞는 도구를 선택하는 단순한 기준

시중에는 수많은 AI 도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평범한 사용자가 이 모든 것을 쫓아갈 필요는 없다. 현재 가장 범용적이고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는 ChatGPT, Claude, Gemini 정도의 시스템 중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일상의 대부분의 과업을 해결할 수 있다.

각 도구마다 약간의 성향 차이는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모델은 창의적인 글쓰기에 능하고, 어떤 모델은 논리적인 분석이나 방대한 문서 요약에 강점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모델이 최고인가’를 찾는 소모적인 논쟁보다,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월 20달러 정도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유료 버전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벌어주는 효율적인 비서를 고용하는 것과 같다.

특수 목적의 도구들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사용자라면 범용 AI 시스템 하나를 깊게 파고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도구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가 나의 사고 과정을 어떻게 보조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AI가 잘하는 일과 절대 맡겨서는 안 될 일

AI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AI는 인간의 뇌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데이터 속에서 다음에 올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를 예측하여 문장을 만드는 구조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AI의 강점과 약점이 명확히 보인다.

AI가 특히 탁월한 영역은 브레인스토밍, 방대한 정보의 요약, 초안 작성이다. 막막한 빈 페이지를 마주했을 때 AI에게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던져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필요한 상담, 복잡한 맥락 속에서의 가치 판단, 그리고 사실 관계의 정확성이 생명인 전문적인 검증 작업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소위 ‘환각(Hallucination)’이라 불리는, 그럴싸하게 지어내는 거짓말이 여기서 발생한다.

따라서 AI의 결과물을 100%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 AI는 내 생각을 대신해 주는 ‘대체제’가 아니라, 내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보조제’가 되어야 한다. 최종적인 검토와 판단, 그리고 윤리적인 책임은 오직 인간인 사용자의 몫이다. 데이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며,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습관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적 장벽을 넘어 일상의 도구로

AI를 배우는 과정이 거창한 공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매우 단순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할 줄 알고, 메신저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미 준비는 끝난 셈이다. 복잡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법을 외우기보다, 일단 내 일상의 작은 불편함부터 AI에게 해결해달라고 요청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학습법이다.

오늘 저녁 메뉴를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짜달라고 하거나, 읽어야 할 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렇게 하나씩 성공 경험을 쌓다 보면, AI가 내 사고의 한계를 넓혀주는 든든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AI를 가장 잘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줄 아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차례다. 내 일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무엇이며, 그것을 ‘똑똑한 인턴’에게 어떻게 맡기면 내 삶에 더 가치 있는 시간이 생길 수 있을까?

사라지는 해결책들: AI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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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좋으면 된 거 아니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에 누구나 한 번쯤 던졌을 법한 질문이다. 하지만 정답을 빠르게 얻어내는 챗봇의 창을 닫고 나면, 묘한 공허함이 밀려오곤 한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은 매끄럽지만, 그 매끄러움 속에 우리가 직접 부딪히며 얻어야 했던 ‘성장의 근육’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효율성의 함정과 정량화의 폭정

우리는 지금 ‘정량화의 폭정’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하고, 최단 경로를 찾아내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이 지능적인 삶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이 지적했듯, 기술 중심의 이데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하는 것(Doing)’보다 ‘가지는 것(Having)’에 집중하게 만든다. 정답이라는 결과물을 빠르게 가지려 할수록, 그 답을 찾아 헤매던 사유의 과정은 불필요한 낭비로 치부된다.

어린 시절 숲속에서 산딸기를 따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 가시에 긁히고 손끝이 보라색으로 물드는 수고로움, 어떤 열매가 가장 달콤할지 시각과 촉각으로 가늠하던 그 느린 시간들은 단순히 ‘잼’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고요함을 체득하는 일종의 수행이었다. 만약 AI가 가장 효율적인 수확 경로를 알려주고 로봇이 완벽한 당도의 열매만 골라냈다면, 우리는 잼은 얻었겠지만 여름의 평온함과 성취감은 잃어버렸을 것이다.

사고의 외주화와 인지적 역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은 인간 지능이 발달하는 핵심 경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프롬프트 한 줄로 정제된 답을 얻는다. 하버드 가제트나 BBC 같은 매체들이 경고하듯, 이러한 ‘사고의 외주화’는 우리의 비판적 사고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무디게 만들 위험이 크다.

여기에는 기묘한 인지적 역설이 존재한다. AI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더 빠르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주체인 인간의 사고력은 퇴보한다. 도구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도구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도구 없이는 아주 작은 논리적 도약조차 힘겨워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AI가 제시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큐레이터’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동의 상실과 존재론적 위기

일자리 대체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경제적인 생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옥스퍼드대와 예일대 연구진의 예측처럼 번역, 작문, 운전 같은 직업들이 고도기계지능(HLMI)에 의해 대체될 때, 우리가 잃는 것은 월급봉투만이 아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성취하고, 숙련도를 높이며, 자신의 노동이 세상에 기여한다는 감각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

서비스직부터 전문직까지 AI가 인간보다 저렴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단순히 “지루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더 창의적인 일을 하면 된다”는 낙관론은 위험하다. 많은 이들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오직 ‘소비’뿐이라면, 우리는 존재론적인 허기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불편한 진실’

구석기 시대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 그리고 신과 같은 기술력을 동시에 가진 현대인은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여전히 직접 만지고, 느끼고, 갈등하며 성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리콘밸리가 제안하는 ‘마찰 없는(Frictionless)’ 세상은 매혹적이지만, 사실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그 ‘마찰’이다. 오답을 적어 내려간 연습장의 흔적, 서툰 문장으로 썼던 편지,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낯선 골목의 풍경들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이제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했던 ‘불편함’들을 다시 껴안아야 할 때다. AI가 주는 정답보다 내가 내린 서툰 결론을 더 소중히 여기고, 결과보다 과정의 밀도를 높이는 삶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스스로 껴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이 최근 AI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끝까지 고민해 해결한 일은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마침내 찾아낸 해답의 희열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전쟁터 사이버 공간과 새로운 국가 안보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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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뉴스 피드에서 국가 간의 갈등이 물리적 충돌을 넘어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소리 없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며 묘한 서늘함을 느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진격이었다면, 이제는 상대의 전력망을 마비시키고 정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침공’이 일상이 된 시대다. 화면 너머의 코드 한 줄이 실제 도시의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가 가진 치명적인 취약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물리적 경계를 허문 새로운 전장

전통적인 전쟁의 개념에서 전장은 지상, 해상, 공중이라는 명확한 물리적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Cyberspace)이라는 새로운 전장의 등장은 이러한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렸다. 이제 공격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키보드 하나만으로 상대국의 국가 기간 시설을 공격하거나, 경제적 혼란을 야기하는 사보타주를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은 고도로 발달한 경제 대국일수록 인터넷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사이버 공격에 더 크게 노출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정보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곧 공격받을 수 있는 ‘접점’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사이버 공간을 국가 안보의 위협이자 동시에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정의하며, 미국 사이버사령부(U.S. Cyber Command)를 통해 네트워크 방어와 공격 역량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AI의 등장과 전쟁의 패러다임 변화

최근의 사이버 전장은 인공지능(AI)의 결합으로 인해 더욱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일일이 코드를 짜서 공격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스스로 취약점을 찾아내고 실시간으로 공격 경로를 수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기존의 보안 아키텍처가 대응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앞지르는 변화다.

미국은 AI 패권을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보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견될 만큼의 강력한 AI 주도권 확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은 AI를 군사 현대화의 핵심으로 삼는 ‘지능화 전쟁(Intelligentized Warfare)’ 교리를 통해 자율 주행 해군 함정이나 드론 스웜(Drone Swarms)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 역시 시리아나 우크라이나 같은 실제 분쟁 지역에서 자율 무기 체계를 운용하며 그 효용성을 시험하고 있다.

모호한 경계와 책임의 문제

사이버 전쟁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어디까지를 전쟁으로 볼 것인가’라는 정의의 문제다. 단순한 첩보 활동이나 해킹, 정보 유출을 ‘공격’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실제 물리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전쟁’으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모호함은 공격자에게는 은밀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피해자에게는 즉각적인 대응 명분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속성 부여(Attribution)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공격에 사용된 서버의 위치를 찾는 것과, 그 서버를 조작한 개인을 특정하는 것, 그리고 그 개인이 국가의 지시를 받았는지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많은 국가가 완벽한 ‘방어’보다는 상대가 공격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높이는 ‘억제’ 전략에 집중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공격이 방어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이 늘 걸림돌이 된다.

디지털 전장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결국 사이버 전장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전력망, 수도 시스템, 금융 네트워크 같은 국가 핵심 기반 시설이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 이토록 거대한 취약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경각심을 준다.

앞으로의 안보는 단순히 성벽을 높이 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위협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고 복구할 수 있는가 하는 ‘회복 탄력성’의 싸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기술적 우위가 가져다주는 가짜 안전감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안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생성형 AI가 설계하는 신약의 미래와 Converge Bio의 시스템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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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투자 유치 소식으로 보였다. 하지만 투자자 명단에 적힌 Meta, OpenAI, Wiz의 이름과 2,500만 달러라는 숫자를 곱씹어보니 이것은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AI가 생명공학의 ‘운영 체제’를 바꾸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벤처 캐피털 Bessemer Venture Partners가 이끄는 이번 시리즈 A 라운드는 생성형 AI가 실험실의 벤치마크 점수를 넘어 실제 신약 개발 워크플로우에 어떻게 침투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델이 아닌 시스템으로서의 AI

우리는 흔히 Chat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에 프롬프트를 입력해 답을 얻는 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신약 개발의 영역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Converge Bio의 CEO Dov Gertz가 강조했듯, 생물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그럴듯한 분자 구조’를 제안하는 모델이 아니라,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하고 실제 제조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엔드-투-엔드(End-to-End) 시스템이다.

Converge Bio는 DNA, RNA, 단백질 서열을 학습한 생성형 모델을 기반으로 세 가지 구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항체 설계, 단백질 수율 최적화, 그리고 바이오마커 및 타겟 발견 시스템이 그것이다. 특히 항체 설계 시스템의 경우, 생성 모델이 새로운 항체를 만들면 예측 모델이 분자 특성을 필터링하고, 마지막으로 물리 기반의 도킹 시스템이 3차원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는 다층 구조를 가진다. 이는 단일 모델의 환각(Hallucination) 가능성을 시스템적 검증 단계로 상쇄하려는 공학적 접근이다.

바이오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구축과 운영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보면, Converge Bio의 핵심은 고품질의 데이터 큐레이션과 이를 처리하는 파이프라인에 있다. 공개 데이터를 정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고처리량 스크리닝(High-throughput screening)을 통해 얻은 자체 데이터셋을 모델에 피드백하는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유사한 분자 데이터 분석 환경을 구축한다면, Python 기반의 생물정보학 라이브러리와 GPU 가속 환경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 서열 데이터를 처리하고 모델에 입력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처리 환경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 RDKit과 같은 화학 정보학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분자 구조를 SMILES 형태로 변환하고 이를 텐서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 분자 구조 분석 및 전처리를 위한 기본 환경 설정
pip install rdkit pandas torch biopython

# 간단한 SMILES 문자열을 분자 객체로 변환하는 스니펫
from rdkit import Chem
from rdkit.Chem import AllChem

def preprocess_molecule(smiles):
    mol = Chem.MolFromSmiles(smiles)
    if mol is None:
        raise ValueError("Invalid SMILES string provided")
    # 3D 컨포머 생성 (도킹 시뮬레이션 준비 단계)
    mol = Chem.AddHs(mol)
    AllChem.EmbedMolecule(mol, AllChem.ETKDG())
    return mol

# 예시: 간단한 유기 분자 처리
try:
    molecule = preprocess_molecule("CC(=O)OC1=CC=CC=C1C(=O)O") # Aspirin
    print("Molecule successfully processed")
except ValueError as e:
    print(f"Error: {e}")

실제 운영 환경에서는 수만 개의 분자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므로, 이를 API 형태로 서빙하여 생물학자들이 코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Converge Bio 전략의 핵심이다. 그들은 고객사가 자신의 독자적인 데이터를 사용하여 모델을 파인튜닝(Fine-tuning)할 수 있는 프라이빗 인스턴스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데이터 소유권 문제를 해결했다.

실무 적용 단계와 트러블슈팅

생성형 AI를 신약 개발 워크플로우에 통합할 때는 인프라 설정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병목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대규모 단백질 구조 예측이나 도킹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때 GPU 메모리 부족(OOM, Out of Memory) 에러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치 사이즈를 동적으로 조절하거나, 모델의 가중치를 양자화(Quantization)하여 메모리 점유율을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AI 기반 바이오 플랫폼을 구축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데이터 수집 및 정제: 공개 데이터베이스(UniProt, PDB 등)에서 서열 데이터를 수집하고 중복 및 오류 데이터를 제거한다.
  2. 임베딩 모델 학습: DNA/단백질 서열을 벡터 공간으로 투영하는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을 학습시킨다.
  3. 태스크별 헤드 추가: 수율 최적화나 결합 친화도 예측을 위한 전용 예측 레이어를 추가한다.
  4. 실험 검증 루프 통합: AI가 제안한 후보 물질을 실제 랩(Wet-lab)에서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다시 모델에 학습시킨다.

만약 시뮬레이션 서버에서 CUDA out of memory 에러가 발생한다면, 다음과 같이 환경 변수를 설정하거나 메모리 할당 방식을 변경해 볼 수 있다.

# PyTorch 환경에서 메모리 단편화를 줄이기 위한 설정
export PYTORCH_CUDA_ALLOC_CONF=max_split_size_mb:128

# 또는 코드 내에서 캐시 비우기
import torch
torch.cuda.empty_cache()

AI가 바꾸는 R&D의 경제학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수억 달러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Converge Bio가 보여준 성과는 이미 4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완료하며 단일 나노몰(single-digit nanomolar) 수준의 강력한 결합 친화도를 가진 항체를 발견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AI가 단순히 보조 도구가 아니라, R&D의 타임라인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핵심 엔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승부는 누가 더 좋은 ‘모델’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인 ‘데이터-모델-실험’의 루프를 구축했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Meta와 OpenAI의 임원들이 이 회사에 투자한 이유는 아마도 생성형 AI의 논리가 생물학이라는 거대한 데이터 셋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효율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 배운 점은 AI의 가치가 벤치마크의 성능 지표가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코드를 한 줄도 쓰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Actionable output)를 얻게 만드는 ‘시스템적 통합’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AI에게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를 넘어, AI가 어떤 물리적 실체(신약)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과연 AI가 설계한 약이 임상 시험의 높은 벽을 넘어 우리 손에 쥐어지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스템’들이 등장하게 될까?

AI의 거대한 식욕과 메타의 1기가와트 태양광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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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검은색 태양광 패널들이 거대한 바다처럼 일렁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1기가와트(GW)라는 숫자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은 단순히 전력량을 넘어, 현대 기술이 갈구하는 에너지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뉴스 헤드라인에 박힌 이 숫자를 보는 순간, 우리가 사용하는 챗봇과 소셜 미디어 뒤에 숨겨진 ‘물리적인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AI라는 괴물을 먹여 살리는 에너지 전쟁

최근 메타(Meta)가 일주일 만에 약 1GW 규모의 태양광 에너지를 확보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친환경 행보로 읽히지 않는다. 이는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인공지능(AI) 모델이 거대해질수록, 이를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데이터 센터는 상상 초월의 전력을 소모한다. 메타의 데이터 센터 확장 속도는 이미 기존의 에너지 공급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실제로 메타의 전력 사용량은 2019년 이후 200%나 급증했고,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두 배로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AI라는 화려한 디지털 성을 쌓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결국 1GW라는 대규모 전력 확보는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에너지라는 연료’를 선점하려는 빅테크의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텍사스에서 루이지애나까지, 정교하게 설계된 에너지 지도

이번 계약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메타가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텍사스주 러벅(Lubbock) 인근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에서 600MW를 확보한 것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설이 메타의 데이터 센터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지역 전력망(Grid)에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메타 시설이 사용하는 전력 부하를 줄이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루이지애나주에서는 두 건의 계약을 통해 385MW 규모의 환경 속성(Environmental Attributes)을 구매했다. 2년 내 완공될 예정인 이 프로젝트들은 메타가 추구하는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퍼즐 조각들이다. 올해에만 총 3GW 이상의 태양광 에너지를 구매한 메타의 행보는, 이제 빅테크 기업이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 구매자이자 인프라 운영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린워싱의 경계와 재생에너지 인증서의 딜레마

하지만 이러한 행보가 모두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혹은 환경 속성 인증서(EAC)라는 개념이 있다. 메타는 탄소 중립을 주장하며 이러한 인증서를 구매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이것이 실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장부상의 숫자’를 맞추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인증서 구매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청정 에너지를 재할당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새로운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는 효과가 낮다는 분석이다. 특히 루이지애나의 데이터 센터 수요를 맞추기 위해 가스 발전 터빈이 가동되거나, 네브래스카에서 석탄 발전소의 폐쇄가 지연되는 사례는 뼈아픈 지점이다. 겉으로는 태양광을 샀다고 말하지만, 실제 데이터 센터의 서버는 여전히 화석 연료로 돌아가는 전기를 쓰고 있을 수 있다는 모순이 여기서 발생한다.

지속 가능한 지능은 가능한가

알파벳(구글)이 모든 그리드에서 24시간 내내 탄소 없는 에너지(24/7 CFE)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교하면, 메타의 방식은 상대적으로 효율과 비용에 치중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1GW라는 규모의 공격적인 투자가 계속된다면, 결국 시장의 전력 구조 자체가 변할 가능성이 크다. 빅테크의 거대 자본이 재생에너지 시장의 수요를 강제로 끌어올려, 결과적으로 화석 연료의 퇴장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마주하는 매끄러운 AI의 답변 뒤에는, 텍사스의 뜨거운 태양과 거대한 패널들, 그리고 전력망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다. 디지털 세상의 무한한 확장이 물리적 지구의 한계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 할까. 단순히 ‘친환경 인증서’를 사는 것을 넘어, 실제로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기술적 진보가 AI의 발전 속도와 발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이번 관찰을 통해 생각할 점

이번 메타의 사례를 보며 깨달은 것은 AI 경쟁의 본질이 이제 알고리즘 싸움을 넘어 ‘에너지 확보 전쟁’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모델을 설계해도 그것을 돌릴 전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과연 빅테크 기업들이 약속하는 탄소 중립은 진심 어린 책임감일까, 아니면 규제를 피하기 위한 정교한 마케팅일까. 여러분은 우리가 누리는 AI의 편리함 뒤에 숨겨진 이 거대한 전력 소비의 비용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벼농사와 AI의 만남, 기후 위기에 맞서는 새로운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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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후 변화가 가져오는 재난의 규모를 보며,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 담긴 환경적 비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벼농사가 생각보다 많은 메탄가스를 배출한다는 사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뉴욕의 한 스타트업이 인도 농촌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술이 단순히 도시의 편리함을 넘어 지구 반대편 논밭의 공기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 논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우리는 보통 온실가스라고 하면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만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벼농사는 예상외로 강력한 메탄 배출원입니다. 논에 물을 가득 채우는 전통적인 방식은 토양을 무산소 상태로 만들고, 이 환경에서 메탄 생성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가스를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벼농사는 인류가 유발하는 전체 메탄 배출량의 약 10~1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점은 메탄의 위력입니다. 20년이라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영향력이 약 82배나 더 강력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특히 전 세계 쌀 생산의 90%가 집중된 아시아 지역, 그중에서도 소규모 자영농들이 많은 인도와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개별 농가가 너무 많고 환경이 제각각이라 일일이 장비를 설치해 측정하는 것은 비용 면에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미티 랩스가 제시한 AI 기반의 측정과 검증

여기서 뉴욕 기반의 AI 스타트업 미티 랩스(Mitti Labs)의 접근 방식이 빛을 발합니다. 이들은 현장에 값비싼 측정 장비를 일일이 설치하는 대신, 위성 데이터와 지상 연구 데이터를 결합한 AI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데이터에 실제 땅의 정보를 학습시켜, 어느 논에서 얼마나 많은 메탄이 배출되는지를 정밀하게 추정하는 방식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측정, 보고, 검증(MRV)’에 있습니다. 단순히 “탄소를 줄입시다”라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AI를 통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를 수치로 증명해내는 것입니다. 이는 기후 변화 대응이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과학적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미티 랩스는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더 네이처 컨서번시(The Nature Conservancy)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도에서 ‘재생 농법’과 ‘무소각 농법’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AI가 검증한 탄소 감축량은 곧 ‘탄소 크레딧’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변환됩니다. 기술이 환경 보호라는 도덕적 명분을 넘어, 농민들의 실제 주머니 사정을 개선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기술이 농민의 삶을 바꾸는 방식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이 보통 기피하는 분야가 바로 ‘하이 터치(High-touch)’ 사업입니다. 현장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고 설득해야 하는 농촌 사업은 효율성이 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티 랩스는 현지 마을 주민들을 운영 인력으로 채용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외부 전문가가 아닌, 그 땅을 가장 잘 아는 지역 주민들이 AI 기술의 가교 역할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무적인 것은 농민들이 얻는 실질적인 혜택입니다. AI를 통해 메탄 배출을 줄인 것이 검증되면, 여기서 발생한 탄소 크레딧 판매 수익의 일부가 농민과 지역 사회로 돌아갑니다. 보고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규모 농가들은 수익이 약 15% 정도 개선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생계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 때, 변화는 비로소 가속화됩니다. AI는 여기서 단순히 계산기가 아니라, 농민들이 기후 친화적인 농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경제적 인센티브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농민들은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의 탄소를 관리하는 ‘환경 관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셈입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확장 가능성

미티 랩스의 도전은 벼농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들은 기업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공급망 단계의 배출량, 즉 ‘스코프 3(Scope 3)’ 배출량을 측정하는 SaaS 솔루션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합니다.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식품 기업들이 자신의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관리하고 줄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후 위기는 어느 한 기업이나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생산의 최전선에 있는 소규모 농가부터 최종 소비 단계의 기업까지 모든 연결 고리가 데이터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AI가 그 복잡한 연결 고리를 투명하게 시각화하고 가치를 매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빠르게 탄소 중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배운 점은, 가장 첨단인 AI 기술이 가장 전통적인 산업인 농업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입니다. 기술의 목적이 화려한 인터페이스나 편리한 챗봇에만 머물지 않고, 흙 묻은 손으로 땅을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일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 위의 쌀 한 그릇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원인이 될 수도, 혹은 탄소를 흡수하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기술이 만드는 이 조용한 혁명이 우리의 식습관과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