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삶이 주는 해방감과 기안84라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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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불편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안도하게 만드는 걸까. 정교하게 설계된 스튜디오의 조명과 각본대로 움직이는 연예인의 모습이 아닌, 낡은 티셔츠 한 장을 며칠째 입고 있는 한 남자의 무심한 일상이 왜 이토록 강력한 흡입력을 갖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 가면을 쓰느라 잊고 지냈던 ‘날것의 인간’에 대한 갈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효율과 정답의 시대에 던지는 무심한 질문

우리는 늘 효율적인 삶을 강요받는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최적화하는 것이 현대인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기안84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이 정교한 최적화 시스템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그는 굳이 효율을 찾지 않고, 굳이 정답을 맞히려 애쓰지 않는다.

그의 일상은 때로는 게으름으로, 때로는 엉뚱함으로 비치지만 그 기저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거대한 긍정이 자리 잡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엉망진창인 방 안에서도 그는 평온함을 느끼며, 격식 없는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 이러한 모습은 완벽주의라는 강박에 갇혀 스스로를 갉아먹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대리 만족과 심리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단순한 설정이나 캐릭터 연기가 아니다. 웹툰 작가로서 오랜 시간 고독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이가 가진 특유의 독립성과 무던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내면적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계 없는 호기심과 예술가의 시선

기안84를 단순히 ‘웃기는 사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예리하다. 그는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그것을 분석하거나 평가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흡수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름 모를 현지인과 서툰 언어로 소통하며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모습은, 관찰자로서의 태도가 아닌 동료 인간으로서의 접근 방식이다.

그의 웹툰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그는 인간의 가장 초라하고 지질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그 지질함은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약점이다. 자신의 못난 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는, 사실 엄청난 자존감이나 혹은 자아에 대한 완전한 내려놓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정형화된 틀에 박히지 않은 그의 사고방식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창의성으로 발현된다. 뻔한 전개를 거부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그의 행보는, 정답만을 쫓는 세상에서 ‘오답’이 얼마나 흥미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불편함이 주는 위로와 인간미의 회복

처음 그의 모습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이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시간이 흐르며 ‘친근함’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위로’로 변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기안84 같은 모습을 숨기고 산다. 씻기 귀찮아하는 마음,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늘어지고 싶은 욕구, 격식 따위는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억눌러왔던 그 본능적인 모습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그가 보여주는 ‘무해한 무례함’은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깝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긴 그를 보며 우리는 비로소 “조금은 부족해도 괜찮다”는 무언의 허락을 받게 된다.

결국 기안84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삶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이 아니라, 때로는 삐뚤빼뚤하고 투박한 스케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선이 곧게 뻗어 있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엇나간 선 하나가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듯, 우리 삶의 빈틈과 실수들이야말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 된다.

나만의 ‘날것’을 찾는 연습

기안84의 삶을 관찰하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편집하며 살고 있는가. 멋진 사진 한 장을 위해 수십 번 셔터를 누르고, SNS에 올릴 문구를 고민하며 나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보여지는 나’를 가꾸는 데 치중해, ‘느끼는 나’를 방치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더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상황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가끔은 엉뚱한 선택을 해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완벽한 계획표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여행이, 잘 짜인 대본보다는 서툴지만 진심 어린 대화가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오늘 하루, 나를 옥죄고 있던 보이지 않는 규칙 하나를 슬쩍 어겨보는 건 어떨까. 남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할지 몰라도, 나 스스로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그 지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당신이 숨겨두었던, 혹은 잊고 있었던 당신만의 ‘날것’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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