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쇠사슬, 약물 중독이라는 늪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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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약물 중독자들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화면 속 인물들이 겪는 금단 현상과 처절한 갈망의 표정은 내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의지력의 문제’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뜨려 놓았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숨을 쉬어야 하는 것과 같은 강렬한 생물학적 명령처럼 보였다.

의지의 영역을 넘어선 뇌의 하이재킹

우리는 흔히 중독을 ‘정신력이 약해서’ 혹은 ‘쾌락을 쫓는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본 중독의 실체는 뇌라는 정교한 기계의 오작동에 가까웠다. 약물이 체내에 들어오면 뇌의 보상 체계인 도파민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된다. 문제는 이 강렬한 자극이 반복될 때, 우리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도파민 수용체를 줄여버린다는 점이다.

결국 중독자는 예전과 같은 쾌락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약물을 필요로 하는 내성 상태에 빠지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이제 약물을 하는 이유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뇌의 보상 회로가 약물에 의해 하이재킹(Hijacking)된 상태에서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이상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하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된다. 머리로는 “이것을 하면 내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뇌의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갈망의 목소리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장 난 브레이크를 가진 자동차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

결핍과 외로움이라는 진짜 원인

조사를 하며 내가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많은 중독자가 약물 그 자체보다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원했다는 점이다. 약물은 그들에게 일종의 진통제였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극심한 사회적 고립, 혹은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 같은 정서적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들은 가장 빠르고 강력한 수단인 약물을 선택했다.

심리학자 가보르 마테는 “중독의 질문은 ‘왜 중독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고통스러운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중독은 질병인 동시에, 개인이 가진 깊은 내면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비명과도 같다. 사회가 중독자를 범죄자나 낙오자로 낙인찍어 격리할수록, 그들은 다시금 외로움이라는 늪에 빠지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다시 약물을 찾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우리가 중독을 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 치부하는 동안, 정작 치료해야 할 ‘마음의 허기’는 방치된다. 약물을 끊게 하는 물리적인 해독(Detox)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왜 약물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환경적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재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회복으로 가는 길, 연결의 힘

그렇다면 이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와 여러 사례를 통해 내가 배운 가장 강력한 치료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과의 연결’이었다. 중독의 반대말은 ‘절제’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공동체, 함께 고통을 나누고 회복을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을 때 비로소 회복의 가능성이 열린다.

익명의 단주/단약 모임(12단계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효과를 거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만 이런 괴물을 품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 그리고 타인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험이 뇌의 망가진 보상 회로를 서서히 복구시킨다. 약물이 주던 가짜 충만함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진짜 충만함을 경험할 때 뇌는 비로소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날 힘을 얻는다.

물론 회복의 과정은 결코 직선적이지 않다. 수없이 넘어지고, 때로는 다시 약물에 손을 대는 ‘재발’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발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다. 전문가의 의학적 도움과 더불어 정서적 안전망이 구축될 때, 중독자는 비로소 쇠사슬을 끊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에 대하여

글을 쓰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약물 중독은 먼 나라의 이야기나 뉴스 속의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극심한 경쟁, 성과 중심의 문화, 그리고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스마트폰이든, 일 중독이든, 혹은 알코올이든, 본질은 결국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갈망’일 것이다.

중독자를 향한 혐오와 비난은 그들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대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치료는 병원에서 시작되지만, 회복은 이웃의 따뜻한 시선과 포용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번 고민을 통해 나는 인간의 취약함과 그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연결의 힘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었다. 만약 당신 주변에 혹은 당신 자신이 무언가에 잠식되어 괴로워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를 찾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연결될 때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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