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래전부터 지도 위에서 유독 외롭게 떠 있는 점 하나에 마음을 빼앗겼다. 육지에서 130km나 떨어진 곳, 거친 파도를 뚫고 가야만 닿을 수 있는 울릉도는 단순한 여행지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자연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그곳의 공기는 육지의 그것보다 훨씬 서늘하고 짙었으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찰나인지를 묵묵히 웅변하고 있었다.
화산이 빚어낸 경이로운 조각품
울릉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압도적인 지형의 위용이다. 이곳은 신생대 제3기와 4기 사이에 해저에서 솟아오른 해산의 꼭대기 부분으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은 사실 거대한 성층 화산의 일부분이다. 바닷물을 모두 걷어낸다면 해저 2,200m부터 시작해 3,000m가 넘는 거대한 산의 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하니, 그 규모 면에서는 제주도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섬의 중심부로 향하면 말발굽 모양으로 움푹 파인 나리 분지를 만난다. 이곳은 과거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 지형으로, 섬의 다른 곳과는 달리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5천 년 전 마지막 분출이 있었다는 기록과 더불어, 최근까지도 지하 온도가 상승 중이라는 보고는 울릉도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활화산임을 상기시킨다. 백두산과 맞먹는 지온구배를 가지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은, 이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뜨거운 에너지가 잠들어 있다는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잿빛의 조면암과 불그스름하게 산화된 용암류가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40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화산 활동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울릉도를 만들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짙푸른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자연이 설계한 가장 정교한 조각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역사의 파고를 견뎌낸 외로운 섬
울릉도의 역사는 단순히 지리적인 기록을 넘어, 생존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신라 시대에는 우산국이라 불리며 독자적인 체계를 유지하다가, 512년 이사부 장군에 의해 정벌되었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보던 익숙한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섬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무문토기가 발견된 현포나 저동리 같은 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 시대의 공도 정책이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육지로 이주시켰던 이 정책은, 역설적으로 울릉도를 한동안 비어 있는 섬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공백을 틈타 쓰시마 도주가 정착을 요청하거나 일본인들이 몰래 들어와 조업을 하는 등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졌다. 17세기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기개와 그로 인해 일본 막부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과정은, 이 섬이 단순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었음을 말해준다.
프랑스의 라페루즈 탐험대가 ‘다줄레’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실측했던 기록이나, 구한말 러시아의 조선목상회사가 삼림 벌채 특허를 가졌던 일화들은 울릉도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고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작은 섬이 겪어온 격동의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의 평화로운 풍경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시선이 닿는 곳
울릉도 여행의 정점은 단연 독도로 향하는 길이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약 87.4km. 배를 타고 1시간 20분에서 2시간 정도를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그곳은, 울릉도라는 거점이 있기에 비로소 접근 가능한 신비의 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 연결성이다. 날씨가 맑은 날, 울릉도 높은 곳에 오르면 맨눈으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두 섬이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문장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강력한 영유권의 증거가 된다. 일본의 오키 섬에서는 독도가 보이지 않지만, 울릉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독도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왔다. 이는 두 섬이 지리적, 심리적으로 하나의 생활권에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독도 접안시설에 내려 짧은 시간 머물며 느끼는 감정은 경외심에 가깝다.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도와 서도의 모습은, 울릉도가 품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울릉도를 거쳐 독도에 이르는 여정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작은 존재들이 모여 어떻게 역사를 지켜왔는지를 배웠다. 울릉도는 단순히 구경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지구의 역동적인 활동과 인간의 끈질긴 삶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화산이 만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특산물을 일구고 삶을 가꾸어온 사람들의 개척 정신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음에 다시 울릉도를 찾는다면,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나리 분지의 숲길을 더 오래 걷거나 성인봉의 구름 낀 정상에서 섬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또한,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울릉도의 사계절 중 아직 보지 못한 겨울의 시린 바다를 마주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여러분은 지도 위의 작은 점 하나가 주는 위로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세상의 소음에서 완전히 격리된 곳으로 떠나, 오직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에게 울릉도는 어떤 의미의 섬으로 기억될지, 혹은 어떤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