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코발트색 바다 위로 깎아지른 듯한 잿빛 절벽이 솟아 있고, 코끝에는 짭조름한 해풍과 진한 흙 내음이 섞여 들어온다. 성인봉의 984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나리분지의 초록빛 물결은 마치 거대한 초록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눈이 시리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릴 때면, 이곳이 육지에서 130km나 떨어진 고립된 낙원임을 실감하게 된다.
잠들지 않은 거대한 화산의 박동
울릉도는 단순히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활화산이다. 해수면 아래 2,200m 깊은 바다부터 솟아오른 이 거대한 성층 화산은 실제 높이가 3,000m가 넘으며, 부피 면에서는 제주도를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섬의 중앙에 자리 잡은 나리분지는 과거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로, 약 5,000년 전까지도 화산 활동이 이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울릉도의 지온구배가 96℃/km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백두산의 97℃/km와 거의 맞먹는 수치로, 지하에 여전히 뜨거운 마그마방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실제로 섬 곳곳에서 용천수와 함께 이산화탄소가 분출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는 울릉도가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역동적인 땅임을 보여준다.
지질학적 관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산사면 중간에 두껍게 분포한 노르스름한 화산재층과 드물게 발견되는 향암질 용암류에 주목해 볼 만하다. 140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화산 활동의 흔적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험준하면서도 신비로운 지형을 만들어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주하는 조면암과 조면안산암의 잿빛 절벽은 자연이 빚은 거대한 조각품과 같다.
바다가 허락한 계절의 성찬, 봄나물과 해산물
울릉도의 진가는 봄이 왔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겨울 내내 거친 파도를 견디며 살을 찌운 해산물들이 포구의 수족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특히 4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업하는 독도새우는 그 희소성 때문에 1kg에 30만 원을 호가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주황빛 몸에 큰 눈이 특징인 도화볼락, 즉 ‘메바리’다. 회나 물회로 즐겨도 좋지만, 해풍에 말려 구워 먹는 메바리는 울릉도 식탁의 소박한 자부심이다.
산으로 눈을 돌리면 초록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명이나물(명이)과 부지깽이가 산비탈을 덮고, 그 사이로 ‘나물의 귀족’이라 불리는 참고비가 고개를 내민다. 참고비는 털을 벗기고 삶아 말리는 과정이 매우 고되어 말린 상태의 100g 가격이 3~4만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다. 하지만 한 번 그 맛을 보면 일반 고사리는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풍경과 향을 품고 있다.
나리분지의 산채 전문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주문하면 고비볶음, 삼나물무침, 뿔명이김치 등 14가지가 넘는 나물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2만 5천 원 내외의 가격으로 누리는 이 ‘봄나물 잔치’는 울릉도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엉겅퀴밥에 된장을 곁들인 나물 한 점을 올리면, 입안 가득 섬의 생명력이 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영토 수호의 기억을 걷는 길
울릉도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우리 민족이 동해의 끝자락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다. 조선 시대에는 ‘수토(搜討)’라는 체계적인 관리 제도를 통해 섬과 독도를 순찰하며 영토를 수호했다. 1694년 무신 장한상을 비롯한 수토사들이 정기적으로 섬을 돌며 외적의 침입 여부를 확인했고, 이는 오늘날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었다.
태하리 해변 일대를 걷다 보면 수토관들이 남긴 각석문을 발견할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과 기록들은 수백 년 전 이곳을 지켰던 이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한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재단과 울릉도 독도박물관이 협력하여 이러한 수토 유적을 전면 조사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가 몰랐던 영토 수호의 세밀한 기록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1711년 박석창이 제작한 ‘울릉도도형’ 같은 고지도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이 섬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리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행남해안산책로의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길 위에서, 단순히 풍경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거친 파도를 헤치고 들어왔을 수토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섬으로 향하는 여정, 그리고 남겨진 질문
울릉도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도전적이다. 공항이 없기에 오직 배편만이 유일한 통로이며, 포항에서 약 3시간 반, 동해 묵호항에서 약 2시간 50분이 소요된다. 기상 상황에 따라 배편이 취소되는 일이 잦아 여행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유연한 일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도착한 섬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최근 울릉도는 서비스 부실이나 바가지요금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방문객이 감소하는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2만 5천 원의 산채정식 한 상에 담긴 정성과,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화산암의 웅장함을 생각하면 이곳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가성비라는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자연과 역사의 압도적인 가치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은, 진정한 여행이란 편안함이 아니라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하며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거친 파도를 뚫고 도착한 섬에서 만난 붉은 홍해삼의 탄력과 성인봉의 서늘한 공기는 도시의 소음 속에 잊고 지냈던 감각들을 깨워주었다. 만약 당신이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도약을 꿈꾼다면, 동해의 끝에서 기다리는 이 신비로운 화산섬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