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잠든 거인 울릉도와 독도가 건네는 태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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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낡은 지도 한 장을 펼쳐 들고 동해의 끝자락을 가만히 짚어보았습니다. 육지에서 직선거리로 130.3km, 죽변곶에서 가장 가깝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곳에는 거대한 화산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관광지로만 알았던 울릉도가 사실은 바다 밑 2,200m의 심해에서부터 3,000m 넘게 솟아오른 거대한 성층 화산의 꼭대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섬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다 아래 숨겨진 거대한 산의 정체

우리가 흔히 보는 울릉도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해수면 아래에 숨겨진 산체의 바닥 직경은 30km를 웃돌며, 실제 부피로 따지면 제주도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합니다. 140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화산 활동은 섬 전체를 조면현무암과 조면암의 잿빛 절벽으로 수놓았고, 그 중심에는 말발굽 모양의 칼데라인 나리 분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울릉도가 여전히 ‘살아있는 화산’이라는 사실입니다. 지질학적 기준에서 활화산은 1만 년 전까지 분출 기록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울릉도는 약 5,000년 전까지도 화산 활동이 지속되었습니다. 최근 측정된 지온구배는 96℃/km에 달하며, 이는 백두산의 97℃/km와 거의 맞먹는 수치입니다. 섬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와 이산화탄소는 지하 마그마방이 여전히 뜨겁게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은밀한 신호와 같습니다.

역사의 파고를 견뎌낸 고립과 개척의 서사

울릉도의 역사는 고립과 연결의 반복이었습니다. 신라 시대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며 우리 역사에 편입된 이후, 이곳은 때로는 풍요로운 어장으로, 때로는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공도 정책이 실시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한동안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울릉도 사람들의 삶은 늘 독도를 향해 있었습니다.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보인다는 독도는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져 있으며, 이는 일본의 오키 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거리입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것처럼 두 섬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울릉도와 독도가 단순한 영토적 관계를 넘어 하나의 생활권이자 운명 공동체였음을 말해줍니다. 안용복의 활약과 같은 치열한 영유권 논쟁 속에서도 울릉도는 독도를 지키는 든든한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신비의 섬으로 들어가는 현대의 길

과거에는 며칠 밤낮을 꼬박 새워야 닿을 수 있었던 섬이지만, 이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포항에서 출발하면 약 217km의 뱃길을 지나 3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며, 동해 묵호항에서는 170km 거리로 약 2시간 50분이 걸립니다. 최근에는 대형 크루즈의 도입으로 멀미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어 더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화산섬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성인봉의 웅장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수면으로부터 984m 솟아오른 성인봉은 울릉도의 최고봉으로, 원시림의 생명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붉게 산화된 용암류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교차하며,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품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리 분지의 평온함과 해안 절벽의 역동성은 울릉도가 가진 양면적인 매력입니다.

태고의 자연이 주는 위로와 질문

울릉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라기보다, 지구의 시간이 어떻게 쌓여왔는지를 확인하는 탐험에 가깝습니다. 140만 년의 세월이 층층이 쌓인 바위틈에서, 그리고 5,000년 전의 마지막 분출이 남긴 흔적 위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찰나적인지를 느낍니다. 거친 파도를 뚫고 도착한 섬에서 마주하는 고요는 도심의 소음에 지친 마음을 정화해 주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번 기록을 정리하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수천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동해를 지켜온 울릉도와 독도의 묵직한 존재감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요. 다음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이번에는 성인봉의 숲길을 더 천천히 걸으며 발밑에 숨겨진 마그마의 온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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