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최근 아주 기괴한 실험에 몰두했다. 가상의 판타지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AI가 정확히 진단하고 분류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단순히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외형만으로 정체를 맞히는 ‘추론 과정’을 설계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철학적 도전이었다.
분류의 기준과 모호함의 충돌
처음에는 단순한 분류 체계를 세웠다. 뿔이 있고 불을 뿜으면 ‘드래곤’, 털이 많고 늑대와 비슷하면 ‘워그’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AI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뿔이 있지만 불을 뿜지 않는 변종이나, 털이 많지만 늑대와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괴물들이 등장하자 AI는 확신 없는 확률값만을 내놓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AI의 방식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간은 ‘그럴듯한 맥락’을 통해 모호함을 메우지만, AI는 명확한 레이블과 경계선이 없으면 길을 잃는다. 괴물의 정체를 맞히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것이 드래곤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논리적 단서들을 촘촘하게 엮어주는 작업이었다.
직관이라는 이름의 지름길
실험이 진행될수록 흥미로운 점은, 내가 AI에게 가르친 ‘추론 단계’가 사실은 내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직관의 정체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괴물의 발자국 크기와 주변 식물의 타버린 상태를 보고 즉각적으로 화염 속성 괴물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이를 AI에게 가르치려면 ‘발자국 크기 > 50cm’ 그리고 ‘탄화된 식물 존재’라는 개별 조건으로 쪼개어 설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인간의 추론이 얼마나 많은 생략과 비약을 포함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수만 가지의 변수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몇 가지 특징을 포착해 결론으로 점프한다. AI에게 이 ‘점프’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나는 AI가 인간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역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논리의 빈틈을 채우는 상상력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전례 없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였다. 데이터셋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를 마주했을 때, AI는 가장 유사한 기존 카테고리로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다. 반면 인간은 “이것은 기존의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으니 새로운 종일 것이다”라고 가정하며 상상력을 발휘한다.
나는 AI에게 ‘모름’이라는 선택지를 주는 대신, 기존 특징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세우도록 유도했다. 예를 들어 ‘비늘’과 ‘날개’가 있지만 ‘불’이 없다면, 그것을 실패한 드래곤이 아니라 ‘수중 비행 생명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연결하는 논리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이는 기술적인 튜닝이라기보다, AI에게 일종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모사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기계의 거울에 비친 인간의 사고
결국 AI에게 괴물을 진단하는 법을 가르친 이 여정은, 나에게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효율적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완벽한 논리 체계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편견과 빠른 직관,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을 버무려 세상을 이해한다. AI가 정교한 수식으로 정답을 찾아갈 때, 인간은 불완전한 단서만으로도 정답에 근접하는 묘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번 실험을 통해 배운 점은 명확하다. AI는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하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만 설명해야 한다면, 세상의 그 수많은 ‘괴물’ 같은 예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제 나는 궁금해진다. 우리가 AI에게 가르치는 모든 ‘논리’들이 사실은 인간이 가진 가장 비효율적인 부분은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잃어버린 정교한 사고의 체계를 AI를 통해 다시 복원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