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기안84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들을 몰아봤다. 평소 정돈된 삶과 효율적인 루틴에 집착하던 나에게, 화면 속 그의 무질서함은 처음에는 당혹감으로, 그다음에는 묘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헝클어진 머리와 무심하게 걸친 옷차림,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 패턴을 보며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답’의 틀에 갇혀 살았는지를 문득 깨달았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미학
기안84를 정의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아마 ‘날것’일 것이다. 그는 연예인이라는 직업군이 흔히 가지는 정제된 이미지나 철저히 계산된 캐릭터 설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연출된 설정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본연의 성질이 그대로 밖으로 흘러나온 것에 가깝다. 이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면’에 지친 이들에게 일종의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그의 그림이나 웹툰 속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다. 정교한 데생이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대상의 핵심을 꿰뚫는 투박한 선과 솔직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세련됨보다는 진솔함을, 완벽함보다는 인간미를 선택한 그의 예술 세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거나 희화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결핍을 동력으로 바꾸는 태도
많은 이들이 그를 ‘운이 좋은 사람’ 혹은 ‘엉뚱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보에서 지독한 성실함과 결핍을 채우려는 갈망을 읽었다. 웹툰 작가 시절 그가 보여준 작업량과 몰입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부족함을 숨기려 애쓰기보다, 오히려 그 빈틈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그가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보여주는 적응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낯선 곳에서 자신의 기준에 맞는 편안함을 찾으려 애쓰지만, 기안84는 그 환경이 주는 불편함 자체를 삶의 일부로 수용한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현지인과 서툴게 소통하며 겪는 시행착오를 그는 스트레스가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는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현대인의 삶에 ‘과정의 가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경계 밖으로 걸어 나가는 용기
그는 웹툰 작가에서 방송인으로, 그리고 다시 순수 미술과 다큐멘터리 영역으로 자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구축한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는 것에 공포를 느끼지만, 그는 오히려 그 경계 밖으로 걸어 나갈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듯하다. 이는 단순히 유명세를 이용한 외연 확장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탐구하려는 본능적인 호기심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의 ‘결과’만을 보고 그 경로를 복제하려 한다. 하지만 기안84가 보여주는 성공의 방식은 복제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의 성공은 ‘나다움’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발생하는 우연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깎아내는 대신, 자신의 모난 부분을 그대로 둔 채 세상과 부딪히는 그의 방식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다.
나의 삶에 적용해 본 ‘기안식 사고’
그의 삶을 관찰하며 나는 내 일상에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경로로 출근하고, 계획된 업무 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강박적인 삶에서 아주 조금만 틈을 내어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가보지 않은 길로 퇴근해 보거나, 완벽하지 않은 상태의 아이디어를 동료들에게 가볍게 던져보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이 실패로 이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기안84가 보여준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마주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일의 효율이 올라갔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훨씬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인생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그 ‘어긋남’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진짜 요소라는 점을 배운 셈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타인이 정해놓은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엉뚱해도, 때로는 남들보다 느리거나 투박해도,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기안84라는 인물은 나에게 단순한 연예인을 넘어, 삶을 대하는 하나의 철학적 태도를 제시해 준 셈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내가 가진 가장 ‘못난 부분’이나 ‘숨기고 싶은 습관’을 오히려 나의 무기로 삼는다면, 내 삶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차마 드러내지 못한, 하지만 가장 나다운 ‘날것’의 모습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