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기안84의 일상 영상을 다시 정주행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의 연예인이 아니라, 무심하게 늘어진 티셔츠 차림으로 집안을 서성이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처음 그를 TV에서 봤을 때는 그저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보여주는 날 것의 모습이 현대인들이 억눌러온 어떤 본능을 건드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미학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정제된 자아’를 연기하며 살아간다. 출근길의 표정, 상사에게 보내는 메신저의 말투, SNS에 올리는 보정된 사진들까지. 모든 것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세상에서 기안84는 마치 필터가 제거된 원본 사진 같은 존재다. 그는 남들이 보기엔 조금 지저분하거나 무질서해 보일지 모르는 자신의 일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일부러 ‘컨셉’을 잡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그렇게 느낀다. 가식 없는 솔직함은 때로 무례함이나 무지함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지점이 우리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준다. “저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완벽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는구나”라는 무언의 위로를 받는 기분이랄까.
그의 웹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 ‘날 것’의 정서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예능적 장치를 넘어, 현대 사회의 강박적인 완벽주의에 던지는 조용한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핍을 동력으로 바꾸는 예술가의 태도
기안84를 단순히 운 좋은 예능인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집요함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세밀한 묘사보다는 투박한 선과 직관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 서글픔, 그리고 삶의 비루함이 아주 진하게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의 결핍과 부족함을 숨기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한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적응’보다는 ‘수용’에 가깝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성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그를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기안84처럼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투사하여 예술과 예능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그가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보여주는 특유의 생존 방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체면을 차리기보다 당장의 필요를 채우고, 낯선 이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가 사회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야생성’을 상기시킨다.
불편함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미
물론 그의 행동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의 위생 관념에 눈살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그의 엉뚱한 발언에 당혹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기안84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조심하며 살아왔다. 예의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진짜 모습을 지워버린 것이다.
기안84는 그 불편함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그가 주는 불편함은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가요?”라고 묻는 순수한 질문에 가깝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겹겹이 쌓아 올린 사회적 가면을 돌아보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미는 잘 짜인 각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과 그에 반응하는 솔직한 감정에서 기인한다.
결국 우리는 기안84라는 거울을 통해 나의 숨겨진 모습, 혹은 내가 억눌러왔던 자유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주는 웃음의 정체는 단순한 슬랩스틱이 아니라, 억압된 자아가 해방될 때 느끼는 쾌감에 가깝다.
나만의 ‘날 것’을 찾는 여정
기안84를 지켜보며 내가 배운 점은, 굳이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를 깎아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도리는 다해야겠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나만의 독특한 색깔, 혹은 남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취향과 습관들을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지점이 나를 정의하는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라는 캔버스를 채워가고 있다. 어떤 이는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 하고, 어떤 이는 기안84처럼 무심하게 툭툭 선을 긋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냐가 아니라, 그 그림 속에 ‘진짜 나’가 얼마나 담겨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제는 나도 가끔은 정답이 없는 길로 걸어가 보고 싶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잠시 끄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탐색해보고 싶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혹시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조금은 엉뚱하고 투박하지만 사랑스러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잊고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