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이라는 거대한 모순이 주는 해방감

나는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이찬혁의 솔로 활동 영상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AKMU라는 팀 안에서 보여주던 영리한 프로듀서의 모습 너머,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가 보여주는 기괴하면서도 당당한 퍼포먼스들이 묘하게 내 시선을 붙들었다. 특히 아무런 맥락 없이 거리에서 춤을 추거나, 정적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꿋꿋이 자신의 세계를 설파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낯선 해방감을 느꼈다.

아이돌의 문법을 파괴하는 예술가의 태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K-팝 스타’의 정석은 대중의 기호에 맞춘 정교한 서비스다. 하지만 이찬혁은 그 정교함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방식을 택한 듯 보인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거나 곡을 잘 쓰는 단계를 넘어,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는 시각적 서사와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음악보다 앞세우기도 한다.

처음 그의 파격적인 행보를 봤을 때는 그저 ‘관종’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치밀하게 계산된 ‘낯설게 하기’ 전략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착하고 재능 있는 동생’의 프레임을 스스로 깨부숨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이찬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음악적 문법 역시 마찬가지다. 멜로디의 유려함보다는 리듬의 변주나 가사의 역설에 집중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문이야말로 그가 의도한 예술적 접점이다. 정답을 알려주는 음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음악을 지향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신선하다.

평범함이라는 감옥을 탈출하는 법

이찬혁의 행보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부끄러움’을 다루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산다. 적당히 튀지 않고, 적당히 섞여 들어가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그는 기꺼이 ‘이상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가 선보이는 난해한 패션이나 돌발적인 행동들은 사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표현 욕구’의 극단적인 투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색깔을 내뿜고 싶어 하지만, 실패했을 때 돌아올 조롱이 두려워 스스로를 검열한다. 이찬혁은 그 검열의 단계를 완전히 생략하거나, 혹은 그 검열 자체를 하나의 유희로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당당함은 단순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기인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맞다”는 식의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논리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지쳐가는 우리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를 보며 느끼는 당혹감은 사실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한 자기표현’에 대한 질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KMU의 이찬혁과 솔로 이찬혁 사이의 균형

물론 그는 여전히 AKMU의 핵심 멤버다. 동생 이수현과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내는 음악들은 여전히 대중적이고 따뜻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솔로 활동에서 보여주는 그 극단적인 실험성이 결국 AKMU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가 안전한 길만 걸었다면, AKMU의 음악은 어느 시점에서 정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외부에서 끊임없이 충격을 주고,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 있기에, 그들이 내놓는 앨범들은 매번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양극단의 가치를 동시에 쥐고 흔드는 법을 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내어 제공하면서도, 그 안에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들어 넣어 듣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는 천부적인 감각이기도 하겠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냉철한 분석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만의 ‘이상함’을 긍정한다는 것

이찬혁이라는 인물을 관찰하며 내가 배운 점은, 결국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박수가 아니라 나의 만족에 집중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는 남들이 비웃을 때 오히려 그 비웃음을 음악의 소재로 삼고, 오해받는 상황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승화시킨다. 이는 단순히 연예인으로서의 전략을 넘어,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매우 건강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내면에 조금씩 ‘이상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급급하고,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찬혁은 그 이상함이야말로 나를 정의하는 가장 고유한 정체성임을 증명해 보였다. “이상해도 괜찮다, 아니 이상해야 특별하다”는 메시지가 그의 모든 행동 속에 녹아 있는 셈이다.

이제 나는 내 삶 속의 작은 ‘이상함’들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기로 했다. 모두에게 이해받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믿는 가치와 취향을 조금 더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정해진 삶보다는 오답투성이더라도 내가 직접 쓴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삶이 훨씬 더 다채롭지 않을까.

여러분은 스스로의 어떤 ‘이상함’을 숨기며 살고 있나요? 혹은 그 이상함을 세상 밖으로 꺼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때로는 이찬혁처럼 조금은 뻔뻔하게, 나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걸어보는 경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