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기계가 ‘상상 속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의 증상을 정의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단순한 데이터 매칭을 넘어선 ‘추론’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논리가 지배하는 AI의 세계에 판타지라는 불확실성을 주입했을 때 어떤 균열과 발견이 일어날지 확인하고 싶었다.
가상의 질병과 논리의 체계
처음 시도한 것은 AI에게 가상의 생태계를 학습시키는 일이었다. 단순히 “드래곤이 아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몬스터마다 고유한 생리적 특성을 정의한 데이터셋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화염 속성 몬스터는 체온이 섭씨 1,000도 이상이어야 정상이며, 이 온도가 800도로 떨어지면 ‘냉각성 무기력증’이라는 가상의 질병에 걸린다는 식의 규칙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AI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AI는 처음에는 단순히 ‘온도 하락’과 ‘무기력증’이라는 단어의 빈도수를 계산해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가 “주변 환경이 영하 50도인 빙하 지형으로 이동했다”는 변수를 추가하자, AI는 단순한 질병 진단이 아니라 ‘환경에 의한 일시적 저온 현상’과 ‘내부 장기 손상으로 인한 발열 저하’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결국 AI에게 몬스터를 진단하게 만든 것은 방대한 데이터가 아니라, 엄격하게 설계된 논리적 제약 조건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다루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정교한 규칙이 필요했다는 역설이 여기서 드러났다.
추론의 함정과 인간의 직관
학습이 진행될수록 AI는 놀라운 진단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기괴한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날개가 꺾인 그리핀의 사례를 입력했을 때 AI는 “날개의 각도가 15도 틀어졌으므로 비행 불능이며, 이는 곧 소화 불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데이터상에서 ‘비행 불능’과 ‘활동량 감소’, 그리고 ‘소화 기능 저하’가 통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날개가 부러졌는데 왜 갑자기 소화를 걱정하지?”라고 즉각적으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AI에게는 모든 데이터가 동일한 가중치를 가진 숫자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인간의 직관이라는 것이 사실은 수많은 ‘상식적 필터’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를 쳐내는 고도의 효율적 프로세스라는 점을 깨달았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추론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말이 안 되는 선택지’를 본능적으로 제거하며 답을 찾아간다. 반면 AI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에 오히려 가장 비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정의되지 않은 영역을 마주하는 법
실험의 정점은 AI에게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몬스터’를 진단하게 했을 때였다. 기존에 학습시킨 드래곤이나 그리핀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특성을 가진 생명체의 증상을 제시했다. AI는 처음에는 당황하며 기존 데이터 중 가장 유사한 몬스터의 진단법을 적용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기존의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제시된 증상들 사이의 공통점만으로 새로운 가설을 세우라”고 지시하자 변화가 생겼다.
AI는 더 이상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지 않고, 귀납적 추론을 시작했다. “A 증상과 B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생명체는 외부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의 대사 체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주어진 단서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이 순간 나는 AI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인 ‘패턴 인식과 가설 설정’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상의 괴물을 진단하는 과정이 역설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정의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 셈이다.
우리가 믿는 논리는 얼마나 견고한가
이번 실험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믿는 많은 판단이 사실은 매우 좁은 범위의 경험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몬스터의 진단에서 범했던 오류들은,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매우 닮아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세상을 해석하며, 그 범위를 벗어난 존재를 마주했을 때 억지로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곤 한다.
이제 나는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의 사고 과정을 객관화해서 보여주는 인지적 파트너로 바라보게 되었다. 기계가 내놓는 엉뚱한 답은 틀린 답이 아니라, 내 논리의 빈틈을 알려주는 힌트였다.
만약 당신이 믿고 있는 확고한 상식이 어느 날 완전히 무너진 가상의 세계에 던져진다면, 당신은 AI보다 더 유연하게 새로운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정답지’를 찾으며 헤매게 될까. 이 질문이 내가 이 기묘한 실험 끝에 얻은 진짜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