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실리콘밸리의 투자 동향을 살피다가 Converge Bio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이 2,50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순히 투자 금액이 커서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붙은 투자자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의 거물인 Bessemer Venture Partners는 물론이고, Meta와 OpenAI, 그리고 보안 업계의 유니콘인 Wiz 출신의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빅테크의 뇌들이 왜 바이오로 모이는가
최근 테크 씬의 가장 큰 흐름 중 하나는 AI가 단순히 챗봇이나 이미지 생성에 머물지 않고, 물리적인 세계, 특히 생명공학(Biotech)의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Converge Bio에 투자한 인물들이 Meta나 OpenAI 같은 곳에서 AI의 정점을 경험한 이들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이미 데이터의 패턴을 읽고 예측하는 모델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고, 이제 그 무대를 ‘단백질 구조’나 ‘유전자 서열’ 같은 생물학적 데이터로 옮기려 하는 것이다.
생물학은 본질적으로 거대한 데이터의 집합체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정제되지 않았고, 변수가 너무 많아 인간의 직관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서 AI 전문가들의 시각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생물학적 난제를 일종의 최적화 문제(Optimization Problem)나 패턴 인식 문제로 치환하여 접근한다. Converge Bio가 추구하는 방향 역시 이러한 계산 과학적 접근을 통해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특히 Wiz 출신 임원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Wiz는 클라우드 보안 분야에서 유례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준 기업이다. 보안 분야의 핵심은 ‘복잡한 인프라 속에서 보이지 않는 취약점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는 수조 개의 분자 조합 속에서 특정 질병에 반응하는 단 하나의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신약 개발의 과정과 구조적으로 매우 닮아 있다. 결국 서로 다른 도메인의 천재들이 ‘복잡성 해결’이라는 공통 분모 아래 모였다고 볼 수 있다.
Bessemer가 베팅한 ‘계산 생물학’의 미래
Bessemer Venture Partners 같은 전통적인 강자가 초기 단계에서 과감하게 베팅했다는 것은, 이제 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이 ‘실험실 중심(Wet-lab)’에서 ‘컴퓨터 중심(Dry-lab)’으로 완전히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신약 개발이 수만 번의 시행착오와 운에 기대어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수억 개의 시뮬레이션을 먼저 돌려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몇 가지 옵션만을 실험실로 보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방식은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춘다. 2,500만 달러라는 초기 자금은 아마도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생물학적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는 최상위 수준의 AI 엔지니어와 생물학자들을 영입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데이터를 가진 자가 이기는 시대에서, Converge Bio는 AI 모델의 정교함과 고품질의 생물학적 데이터를 결합해 진입 장벽을 쌓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가 단백질 구조 예측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Converge Bio는 그 다음 단계, 즉 예측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는 치료제를 ‘설계’하는 generative design의 영역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코딩하듯 제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같다.
자본과 인재의 결합이 만드는 파괴적 혁신
이번 투자 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적 네트워크의 응집력’이다. Meta, OpenAI, Wiz라는 각 분야의 정점에 있던 이들이 한 팀의 비전에 동참했다는 것은, 그들이 내부적으로 공유하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AI 모델의 규모(Scaling Law)가 성능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기에, 생물학 데이터 역시 일정 임계점을 넘어서는 모델이 구축된다면 의료 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AI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챗봇만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신소재 개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배터리 설계, 그리고 이번 Converge Bio의 사례처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정밀 의료까지, AI의 적용 범위는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결국 핵심은 ‘누가 더 도메인 지식이 깊은 전문가와 최고의 AI 엔지니어를 한 방에 모아놓을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물론 생물학은 소프트웨어와 다르다. 컴퓨터에서는 코드가 맞으면 실행되지만, 생물학에서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분자라도 실제 인체 내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Converge Bio가 보유한 인적 자원과 자본력이라면, 이러한 ‘현실의 벽’조차 데이터 피드백 루프를 통해 빠르게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
이번 소식을 접하며 나는 다시 한번 기술의 융합이 가져오는 속도감에 전율을 느꼈다. 예전에는 생물학자가 AI를 배우거나, 개발자가 생물학 공부를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두 영역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 표준을 만들려 한다. 이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산업의 정의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앞으로 Converge Bio가 어떤 구체적인 파이프라인을 공개할지, 그리고 그들이 정의하는 ‘AI 기반 바이오’의 실체가 무엇일지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과연 그들이 2,500만 달러라는 마중물을 통해 암이나 희귀 질환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치트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AI가 생명 설계의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미래에 ‘질병’이라는 개념 자체를 어떻게 정의하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거대한 전환점의 초입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