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자율주행 시스템과 산업용 로봇 제어 AI의 안전성 보고서를 훑어보다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텍스트 기반의 LLM이 엉뚱한 대답을 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은 그저 웃어넘길 해프닝일 수 있지만, 물리적 실체를 가진 AI가 현실 세계에서 환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바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확률적 예측이 아니라, 절대 변하지 않는 물리 법칙이라는 ‘기준점’이 AI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확률의 세계와 물리 법칙의 충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딥러닝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확률적 최적화에 기반한다. 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일지, 혹은 이미지의 특정 픽셀이 무엇일 확률이 높은지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안전-크리티컬(Safety-Critical) 시스템에서는 ‘확률적으로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시점에 99%의 확률로 밟는 것이 아니라, 100%의 확실성으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물리적 접지(Physics Grounding)의 부재다. AI는 데이터셋 속에 포함된 물리 법칙을 ‘학습’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력 가속도나 마찰 계수 같은 물리 상수는 데이터의 패턴 속에 녹아있을 뿐, 모델이 이를 절대적인 제약 조건으로 인식하고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델이 학습 데이터에서 보지 못한 엣지 케이스(Edge Case)를 만났을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궤적을 그리거나 위험한 명령을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다층 안전망(Multi-Layer Safety)의 설계 원리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업계에서 주목하는 방식이 바로 다층 안전망(Multi-Layer Safety) 구조다. 이는 AI 모델 하나에 모든 안전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모델의 출력값이 외부로 나가기 전 여러 단계의 필터와 검증 과정을 거치게 하는 전략이다. 마치 항공기의 다중 백업 시스템처럼, 하나의 층이 뚫려도 다음 층에서 사고를 막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층은 모델 내부의 제약 조건 최적화(Constrained Optimization) 단계다. 손실 함수에 물리적 제약 조건을 페널티 항으로 추가하여, 모델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결과값을 내놓을 때 강한 패널티를 주는 방식이다. 두 번째 층은 런타임 모니터(Runtime Monitor)다. AI가 내린 결정이 실제 물리 법칙(예: 최대 가속도 제한, 충돌 방지 거리)을 위반하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위반 시 즉시 제어권을 안전 모드로 강제 전환한다.
마지막 세 번째 층은 형식 검증(Formal Verification) 단계다. 이는 수학적 증명을 통해 특정 입력 범위 내에서 AI의 출력이 항상 안전한 범위 내에 있음을 보장하는 작업이다. 이 세 가지 층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우리는 비로소 AI의 ‘확률적 추론’을 ‘결정론적 안전’으로 변환할 수 있다.
물리적 접지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접근법
그렇다면 실제로 AI에게 물리적 상식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물리 기반 신경망(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s, PINNs)의 도입이다. 이는 신경망의 구조 자체에 미분 방정식이나 물리 법칙을 내재화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데이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리 법칙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학습하게 함으로써 데이터가 부족한 영역에서도 물리적으로 타당한 예측을 하게 만든다.
또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활용한 고충실도 시뮬레이션 환경에서의 반복 학습이 필수적이다. 가상 세계에서 수백만 번의 사고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하되, 각 시나리오 끝에 ‘물리적 실패’에 대한 명확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션과 실제 환경 사이의 간극인 Sim-to-Real Gap을 줄이는 일이다. 실제 센서의 노이즈와 환경적 변수를 정교하게 모델링하여, 가상 세계에서 배운 안전 규칙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도록 정밀하게 튜닝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AI를 향한 여정
결국 안전-크리티컬 AI의 핵심은 ‘AI를 얼마나 믿느냐’가 아니라 ‘AI가 틀렸을 때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AI의 지능이 높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그 지능을 가둘 수 있는 더 견고한 물리적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능은 유연해야 하지만, 안전은 경직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깨달은 점은, AI의 발전 방향이 단순히 모델의 파라미터를 늘리는 ‘스케일링 법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메인 지식, 특히 물리적 세계의 불변하는 법칙을 어떻게 아키텍처 수준에서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물리적 접지가 결여된 AI에게 제어권을 완전히 넘겨준다면, 우리는 통제 불가능한 확률의 도박을 하는 것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AI가 내린 결정의 근거를 물리적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설명 가능한 안전 AI(XAI for Safety)’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보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AI의 안전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과연 수학적 증명만으로 AI의 모든 돌발 행동을 막는 것이 가능할까?